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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식영(柳植永)
 

류 식 영 柳  植  永

 

<류식영 : 1827~1884 : 高宗朝 行誼 大丞公 30世 : 左相公派>

 

자 문찬(文贊). 호 성재(雀齋),

서산 자미(西山 自漏)의 14대손이요, 농포 희달(弄圃 希達)의 8대손이요, 학봉 흥경(鶴峰 興慶)의 2자이며, 금성정한규(錦城鄭漢奎)의 외손으로 순조(純祖) 27년 T亥 7월 2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보통 사람에 벗어나 어른들의 귀염을 받더니 취학(就學)하여 경서(經書)를 통달하고 특히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어 사리의 판단이 정확하였다. 한편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할 뿐 아니라 백씨 수영(伯氏 壽永)과 계씨 보영(季氏 寶永)으로 더불어 우애가 독실하여 효우문(孝友門)으로 일컫었다.

기개가 호협하고 언론이 쾌활하여 어느 좌석이든 공이 참석하면 좌중(座中)이 온통 제압되지 않음이 없었다. 일찌기 팔도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면서 마침 문경(聞慶)새재를 넘는데 산적들이 달려들어 길을 막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이에 공께서 부싯돌을 꺼내어 치아(齒牙)로 갈아 단번에 불을 켜서 위엄을 과시하니 산적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도망하였다. 이로써 동행했던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 무사히 새재를 넘고 공의 호협지기(豪俠之氣)를 극히 칭탄하였다. 이 밖에도 시세에 통달하여 혹 저자를 들리어 물가의 등락(騰落)을 말하면 반드시 적중함으로 사람들이 공을 추종하여 이득을 본 바가 많았었다.

고종(高宗) 21년 甲申 9월 20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58세였다.

배위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인태(仁泰)의 따님으로 묘소는 나주군여황면(羅州郡艅蝗面), 현 광산군본양면(光山郡本良) 부수동 을음치 정좌(芙水洞 乙音峙 T坐)에 부군과 합부로 모시었다.

2남 1녀를 두어 장남은 인회(寅回)요, 차남은 인섭(寅攝)인데 족숙 중영(重永) 후로 출계하였으며, 따님은 평택임상우(平澤林相佑)에게 출가하였다.

자손은 장성군진원면(長城郡珍原面)에 살았는데 지금은 이거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다.

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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