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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지성(柳志晟)



류지성 柳 志 晟

<류지성, 號 : 東谷 : 1910.11.27.~1981.11.13. 社會事業家, 漢醫, 企業家, 貞肅公派 : 大丞公 33世>

관찰사공 장(章)의 후예로 증 호조참의 최영(最榮)의 5대손이요, 인걸(寅杰)의 손이요, 한의사 해성공(海酸公) 상렬(庠烈)의 6남 2녀중 4남으로 황해도 연백(延白)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연안송씨(延安宋氏)이다.

일찌기 어려서부터 품성(稟性)이 영매(英邁)하고 지혜가 총명(聰明)하여 널리 경전(經典)과 사서(史書)를 통하고, 또한 신학문(新學問)을 정숙(精熟)하였다.

성년이 되자 선친으로부터 한의학(漢醫學)을 전공하여 묘방(妙方)을 모두 전수(博授)받고, 23세에 선친이 별세하자 거상(居喪)에 애훼유제(哀毁踰制)하고 선업(先業)을 계승하여 난치기질(難治奇疾)을 묘조첩약(妙調貼藥)하여 쾌유득효(快癒得效) 한 자 심히 많았다.

을유년 8 ․ 15 광복후 사회질서는 극도로 혼란해지고 기한(飢寒)에 신고(辛告)하는 난민이 허다함을 보고 뜻있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서울 충무로에 대생원(大生院)이란 사회사업단체를 설치하고 정재(淨財)를 바쳐 기민(飢民)을 구휼(救恤)하고, 지역정화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지역민의 애국심 고취를 계도(啓導)하며 질서회복에 진력하니 이로 인하여 흉흉하던 세풍이 순화되고 덕화(德化)에 힘입은자 무수한데 모두 제세현자(濟世賢者)라 경송(敬頌)하였다.

6 ․ 25동란을 겪고난 후 기업에 뜻을 세워 강원도 삼척에 호명광업소(虎明鑛業所)를 창업하여 번창을 기하고, 또 제지업(製紙業)에 착수하여 1973년 서울이촌동에 삼보판지 공업사(三寶版紙工業社)를 창설하여 생산유통기반을 확고히 구축하고 장자 종욱(鍾旭)으로 하여금 경영 관리케 하였으며, 1976년 창원제지(昶元製紙), 1978년 삼원 제지(三元 製紙)를 설립하여 명실 공히 굴지의 업체로 발전시켜 놓았다.

말년에는 문화류씨 정숙공파 종중종사에 진력하고 임종에 즈음하여 천주교에 입문, 영세를 받고 “바오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72세를 1기로 서교동 자택에서 별세하니 경향제사(京鄕諸士)가 애석하였다.

묘비는 문학박사 학술원 원로회원 전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 혜암(惠庵) 류홍렬(柳洪烈)이 글을 짓고, 원로서예가 원곡(原谷) 김기승(奈基昇)이 글씨를 썼다.

공은 몸가짐이 진중하고 심중이 유순(柔順)하여 사물을 순히하고 남을 질투하고 자만함이 없었다.

부인 남양홍씨(南湯洪氏)는 이름이 재희(在喜)니 태섭(治燮)의 따님으로 어려서부터 천품(天稟)이 숙완(淑婉)하여 정훈(庭訓)을 승습(承襲), 언어풍행(言語風行)이 온후하더니 류문(柳門)에 입가(入嫁)하여 부군(夫君)을 지성으로 섬기며 순실(純實)히 내조하는 한편, 처가(處家)에 화유(和愉)하여 당내가 온명(溫明)하고, 친척을 예(禮)로써 대하니 일문(一門)이 담락(湛樂)하였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니 장자 종욱(鍾旭)은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선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삼보판지, 대림제지, 대림상역, 삼보상공등 4개 업체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하고, 2자 종우(鍾字)는 창원제지주식회사 대표이사요, 3자 종규(鍾圭)는 삼보상공주식 피사 대표이사요, 4자 종림(鍾林)은 미국 싼호세주립대학 대학원에서 경역학박사 과정을 이수중이다.

장녀 인순(仁順)은 남양인 홍진오(洪鎭五)에게 출가하니 사위는 학교법인 문흥학원(文興學園) 이 사장이요, 2녀 현순(賢順)은 안동인 권오달(權五達)에게 출가하니 사위는 주식회사 대림제지 대표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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