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파 일 1  js0010.jpg (46.6 KB) Download : 6
  파 일 2  js0521.jpg (56.7 KB) Download : 5
  제    목  동국신속삼강행실찬집청의궤 本廳의 류희량(1628 卒)


 


柳希亮 (당시 1614년)

柳根 등이 광해군의 명에 의해 우리나라 역대의 三綱의 사례를 모아 수록하고 언해하여 18권 18책의 목판본으로 편찬‚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15세기 말에 간행된 ≪三綱行實圖≫와 16세기 초에 간행된 ≪續三綱行實圖≫의 속편에 해당하는 것이다. 序文‚ 箋文‚ 跋文의 기록 및 ≪光海君日記≫‚ ≪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의 관련 기사 등에 그 간행 경위가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에 旌表를 받은 충신‚ 효자‚ 열녀를 중심으로 하여 1613년(광해군 5)에 상·중·하 三篇으로 편찬된 <新續三綱行實>을 토대로‚ ≪輿地勝覽≫ 등의 고전 및 각 지방의 보고 자료 중에서 취사선택하여 1천여명의 略傳을 만든 뒤 ≪삼강행실도≫의 예에 따라 그림을 붙이고 언해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편찬은 序文과 箋文의 기록에서와 같이 1615년(광해군 7)에 이미 완성되었으나‚ 막대한 간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방 5도에 간행을 분담시켜 전라도 6책‚ 경상도 4책‚ 公洪道(지금의 충청도) 4책‚ 황해도 3책‚ 평안도 1책씩을 각각 간행하도록 하여‚ 1617년(광해군 9)에 비로소 그 간행이 완료되었다.이 책은 새로 편찬한 <新續孝子圖> 8권‚ <新續忠臣圖> 1권‚ <新續烈女圖> 8권과‚ 선대의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에 수록된 사례 가운데 우리나라의 것만을 뽑아서 1책으로 다시 편찬한 元續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체재는 앞서 간행된 三綱行實圖類의 문헌들과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 ≪삼강행실도≫가 事蹟을 그림과 한문으로 설명하고 詩贊을 붙인 후 欄上에 언해를 하는 방식을 채택한 이래 ≪속삼강행실도≫와 ≪二倫行實圖≫ 등 후속 교화서들이 이 체재를 그대로 답습해 왔는데‚ ≪東國新續三綱行實圖≫는 詩贊을 붙이지 않고 언해를 匡郭 안으로 들여 한문 원문 뒤에 한 칸을 내려서 배치하는 등 다소 정돈된 체재를 채택하고 있다.이 책은 방대한 분량 때문인지 重刊은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간본은 국내의 경우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完帙本은 <奎 1832>에 한한다. <奎 1832>는 ‘萬曆四十六年(1618)正月日 內賜新續三綱行實一件太白山上’이라는 內賜記를 가진 內賜本으로‚ 新續 17책 및 東國三綱行實圖와 東國續三綱行實圖를 합본한 元續 1책까지 모두 갖추고 있으며‚ 新續孝子圖 권1의 序와 箋‚ 新續烈女圖 권8의 跋‚ 그 뒤에 붙은 간행에 관여한 官員職名까지 훼손된 부분 없이 완벽한 보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奎 39>는 元續 1책만을 缺한 17책으로 되어 있으며‚ 이 또한 ‘萬曆四十六年正月日 內賜新續三綱行實一件五臺山上’이라는 內賜記를 가진 內賜本이다. <奎 1931>은 新續孝子圖 권3‚ 4‚ 5‚ 6‚ 7과 新續烈女圖 권1‚ 3‚ 7 및 元續 1책을 缺한 9책의 落帙本이다. 이 책은 앞의 <奎 1832>와 같은 내사기를 가지고 있어 그와 동일한 판본임을 알 수 있다. <奎 38-1>은 元續 1책만 남아 있는 零本이다. 이 책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편찬하고 난 뒤‚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에서 우리나라의 효자‚ 충신‚ 열녀를 가려 뽑아 수록하여 각각 <東國三綱行實圖>와 <東國續三綱行實圖>라 하고 이를 한 권으로 매어 별책으로 낸 것이다. 부록격으로 편찬된 이 1책의 명칭은 그간 이를 칭하는 이름으로 통용되어 왔던 ‘續附’라는 말과 관련하여 정확하게 규명될 필요가 있다. ‘續附’라는 말은 이 책의 표제인 ‘東國三綱行實圖’에 협주로 부기되어 있는데‚ 이는 <동국삼강행실도>가 앞에 매였는데다가 분량도 많아서 표제는 ‘東國三綱行實圖’라 하되 그 뒤에 <동국속삼강행실도>가 붙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같이 묶인 이 1책의 명칭은 ≪광해군일기≫ 9년(1617) 3월 11일조의 ‘東國新續三綱行實元續18卷 分刊公洪平安黃延慶尙全羅等五道云云’의 기사에서와 같이 ‘元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이 책은 근대국어의 기점인 17세기 초에 간행된 문헌으로 근대국어 연구에 특히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며‚ 元續 1책에 한하는 것이긴 하나 앞 시기의 ≪삼강행실도≫ 및 ≪속삼강행실도≫와 비교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국어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의 국어사적인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표기법과 관련하여 어두된소리의 표기가 매우 혼란스러운 점을 들 수 있다. 합용병서의 경우‚ 三字 합용병서인 ‘ᄢ‚ ᄣ’이 여전히 사용되면서 ㅅ계 합용병서와 ㅂ계 합용병서가 공존하고 있다. ‘뎌(孝1‚ 43)‚ 텨(忠1‚ 58); 디니라(孝2‚ 84)‚ 텨(烈2‚ 26); 디니라(孝4‚ 29)‚ 텨(忠1‚ 50)’ 등의 예가 그것이다. 각자병서의 경우 ‘ㅆ’과 함께 ‘ㅃ’도 어두음절에 나타난다. ‘뎌(烈3‚ 88)‚ 혀(孝8‚ 20)’와 함께 나타나는 ‘빠뎌(烈3‚ 37)‚ 빼여(烈4‚ 23)’ 등의 예가 있다. 17세기 자료로서 ‘ㅿ’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17세기에 이르면 ‘ㅿ’은 거의 완전히 소멸하는데도 소수이긴 하지만 ‘’과 함께 ‘(孝6‚ 22)’‚ ‘’과 함께 ‘(孝6‚ 27)’‚ ‘아’와 함께 ‘아(孝8‚ 16)’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과 함께 ‘고(孝8‚ 17)’이 나타난 점으로 ‘ㅿ’은 ‘ㅇ’의 표기로 생각된다. 또한 17세기 초기의 문헌에서는 체언과 조사가 분철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이 문헌은 한자어 표기에서의 몇몇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철 표기만을 고수함으로써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표기에 있어서 유성적 환경에서 ‘ㄹ’과 ‘ㄴ’이 혼기되고 있는 예도 많이 보이는데‚ ‘가녜대로(孝1‚ 18)‚ 고구녀(忠1‚ 4)‚ 오히녀(孝8‚ 15)‚ 브느지져(孝4‚ 29)‚ 무명지(孝8‚ 41)‚ 닐웨(孝6‚ 47)‚ 먹기(烈7‚ 21)’ 등 ‘ㄹ’이 ‘ㄴ’으로 표기되는 현상이 지배적이나‚ 그 반대의 경우인 ‘극거(孝2‚ 49)‚ 병드럳거(孝4‚ 86)‚ 를거[老](孝7‚ 84)’ 등의 예도 나타난다.이 문헌은 근대국어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음운 현상도 반영하고 있다. 먼저 i 움라우트의 가장 이른 시기의 예에 해당하는 ‘제기(忠1, 24), 지애비(三綱烈 5)’ 등과‚ t 구개음화를 보이는 ‘건져내여(烈4, 12)‚ 고쳗더라(烈4, 24)’와 같은 귀중한 예를 포함하고 있다. ‘목솜(孝8; 14)‚ 슬품(孝7, 4)‚ 머무러(烈4, 24)‚ 문득(孝8, 19)’ 등 원순모음화의 예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흙(三綱孝 1)‚ 소매로(烈4, 14)‚ 고을(烈4, 29)’ 등과 같이 어두음절에서‘ ’의 동요를 보이는 예도 발견된다. 한편 ‘ 나마 밥 아니 먹고 물 먹거늘 뿌모 닐오 먹고 우루 엇더뇨(三綱烈, 6)’의 ‘뿌모’처럼 주격 조사의 자리에 ‘’가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예가 있는데‚ 이는 오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미에 있어서도‚ 이 시기에 선어말어미 ‘-오-’는 적어도 동명사어미 ‘-ㄴ‚-ㄹ’과 연결어미 ‘-니’‚ 종결어미 ‘-다’ 앞에서는 소멸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문헌은 대부분 ‘-오-’를 유지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준다. 또한 연결어미에서 ‘알오(續三綱忠 1)‚ 디내오(續三綱孝 7)‚ 와(續三綱孝 8)’ 등은 이 시기에 일반적으로 ‘알고‚ 디내고‚ 과’로 표기되어야 할 것인데 역시 중세국어 어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상의 국어사적 사실에서 볼 때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문헌임을 알 수 있다.1959년에 국립중앙도서관‚ 1978년에 大提閣에서 각각 영인되었다.

                          ------------------------------------------------------------------------------------------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4-06 17:58)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4-08 10:58)

                                       ------------------------------------------------------------------------------------
                                              낭혜 류지세 발굴.편집


 
       

Next   월정집(月汀集=尹根壽)에 실린 만 문양부원군 柳自新(1612 卒) 편집인
Prev   화기도감의궤 都廳의 류희량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