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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팽로(柳彭老)


류팽로(柳彭老)
미상∼1592년(선조 25).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형숙(亨叔)·군수(君壽), 호는 월파(月坡).개국공신 만수(曼殊)의 후손으로, 경안(景顔)의 아들이다. 천성이 효우(孝友)하였다고 한다.
1579년(선조 12)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옥과현에서 살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대박(梁大樸)·안영(安瑛) 등과 함께 궐기하여, 피난민 500명과 가동(家僮) 100여명을 이끌고 담양에서 고경명(高敬命)의 군사와 합세하였다.
여기에서
고경명이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는데, 그는 고경명 휘하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당시에 기호지방에 돌린 격문을 지었는데, 그 격문이 《정기록 正氣錄》에 실려 있다. 호남의병들은 처음에 근왕(勤王)을 목적으로 북상하려 하였으나, 일본군이 전주를 침입하려 하자 금산에서 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전투에 앞서, 적의 수만의 병력을 오합지졸인 아군으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험한 요지에 분거(分據)하였다가 적이 교만하고 나태해지기를 기다려 공격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이 싸움에서 패전하였다.
일단 탈출한 그는
고경명이 아직도 적진 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적진에 뛰어들어 그를 일단 구출하고는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대사간에 추증되었으며, 뒤에 광주(光州) 포충사(褒忠祠)와 금산 종용당(從容堂)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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