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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동원(柳東源)
 

류 동 원 柳  東  源

 

<류동원 : 1851~1913 : 高宗朝 孝行 大丞公 27世 : 檢漢城公派>

 

자 순종(順宗). 호 쇄헌(灑軒).

함안군수 효용(咸安郡守 孝庸)의 2자 종사랑 인위(從仕郎 仁渭)의 11대손이요. 명규(命奎)의 증손이요. 광인(光仁)의 손이요. 석흥(錫洪)의 아들로 철종(哲宗) 2년 辛亥 11월 27일에 태어났다.

천품이 순수하고 재주가 총명하여 경사(經史)를 널리 익히는 한편 어버이를 섬기되 조석으로 문안을 드리고 반찬을 구비하여 지체(志體)의 봉양을 다하였다. 전후로 친상(親喪)을 당하여 3일을 수장(水醬)을 마시지 않고 슬음을 다하며, 상장(喪葬)의 범절을 한결 예제(禮制)에 쫒아 행함은 물론 복을 마치도록 성묘하되 춥고 더움을 피하지 않았다. 한편 치가(治家)에 검약하여 남루한 옷과 하찮은 음식으로 지내면서 가산을 늘려 관혼상제(冠婚喪祭)에는 유감없이 행하였다.

위선(爲先)에 독실하여 고종(高宗) 37년 庚子(1900) 8월에 문화군(文化君)과 검한성공(檢漢城公)의 설단(設壇)을 발의하여 제족으로 더불어 일을 완수하고 향사(享祀)를 올렸으며, 그후로도 함안공(成安公)과 사과공(司果公)의 장갈(狀碣)을 받고 또한 제전(祭田)을 갖추는 등 실로 노고가 컸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의방(義方)으로 인도하고 종족들을 화목으로 이끌어 종사(宗事)에 전력하였다.

癸丑 11월 30일 향년 63세로 졸하니 김제군 백산면 황경동(金堤郡 白山面 黃經洞) 동록 계란명당 미좌 (東麓 鷄卵明堂 未坐)에 모셔졌다.

배위 전주이씨(全州李氏)는 규신(奎新)의 따님으로 1남을 두고 일찍 돌아가셔 묘소는 용안읍 봉화산 서록(龍安邑 烽欠山 西麓)에 계셨는데 실전하여 부군 묘소 서쪽 약간의 거리에 초혼장(招魂葬)으로 모시고, 파평윤씨(坡平尹氏)는 덕희(德禧)의 따님으로 2남 1녀를 두고 돌아가시니 묘소는 김제군 공덕면 두모동(金堤郡 孔德面 斗毛洞) 선영하 계좌(先瑩下 榮坐)에 모시었다.

아들 영근(榮根)은 지릉참봉(留陵參奉)이요. 용근(容根) ․ 병근(炳根)이며 사위는 전주이원령(全州李元齡)이다.

辛酉(1921) 년간에 김제(金堤) 고을 사림(士林)들이 공의 효행을 기리어 천장(薦狀)을 올림으로서 동년 11월에 경성(京城)의 오륜행실도 편집발행소로부터 포장(褻狀)이 있었다.

은진송병진(思津宋秉珍)이 행장을 짓고, 己巳(1989) 2월에 묘비를 세웠는데 월성정동휘(月城鄭東暉)가 묘갈명을 지었다.

※ 追先錄 褻狀. 墓碣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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