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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인혁(柳寅赫)



류인혁 柳 寅 赫

<류인혁 : 字 赫汝. 號 靑坡, 1914.10.26 : 忠淸南道參事官, 林川鄕校典校, 扶餘車柳宗親會長, 文化柳氏大宗會顧問, 忠景公派 : 大丞公 31世,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

노운 기현(老雲 基賢)의 자로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한산이씨 준직(韓山李氏 俊稙)의 따님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후하고 재예가 명민하여 부친의 엄한 교훈을 받고 자라면서 부모를 모시고 힘을 다하여 지체(志禮)를 봉양(奉養)하며 잠심역학(潛心力學)하여 사서(四書)를 통효(通疇)하고 동정언행(動靜言行)이 성인의 가르침에 충독(忠篤)하니 칭선(稱善)이 끊이지 않았다.

1947년 충남도참사(忠南道參事)로 배임되어 세도면 근무 후 52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에 피선되고 다음해 임천향교 장의(林川鄕校 掌議)로피선되어 조남술(趙南述), 이병세(李炳世), 김두진(金斗鎭), 이홍(李海弘), 구행서(具行書)등 여러 재임(齋任)들과 함께 이미 농지분배(農地分配)로 들어간 교토(校土)를 정부(政府)에 진정하여 환원시키고 의연금(義捐金)을

모아 6 ․ 25사변(事變)으로 훼손(毁損)된 삼문(三門)을 복원(復元)하고, 제기(祭器), 제복(祭服)을 비롯한 많은 집기(什器)를 완비하여 이로 말미암아 춘추석전(春秋釋典)이 다시 성하게 되었다.

한편 칠산서원 유사(七山書院 有司)로서 원정비(院庭碑) 건립을 주동하고 세도국민학교(世道國民學校) 증축을 주관하여 후생의 면학을 장려하였다.

57년 임천 수리조합장으로 지방 하천을 개수하고, 67년 고을 노인들의 복지를 위하여 세도면에 경로당을 창건하니 이것이 이 고을의 첫번째 경로당이 되었다.

69년 선조 노곡공(老谷公)을 타령(妥靈)한 간곡서원(艮谷書院)이 년구세심(年久歲深)으로 훼손 되어 항상 부끄럽게 여기던차 종의(宗議)를 모아 중건하고 다음해 원정비(院庭碑)를 세워 유덕(遺德)을 천양하고, 그해 세도중학교를 창립하고 기성회장으로 취임하는 한편 71년 세도대흥장학회(世道大興獎學會)를 조직하여 회장을 역임하면서 72년 의연금 1천 7백만원을 모금하여 국민학교 부교재 및 집기(什器) 운동기구등을 갱신하고 효열(孝烈), 애국지사, 향토발전 유공자를 발굴하여 추진위원장으로서 각종 비를 건립하니 향리의 발전과 교육진흥(敎育振興)에 혹은 전래풍화(傳來風化)에 끼친 공덕이 실로 컸었다.

73년 양산사 장의(朗山祠 掌議)로써 낡은 기와를 벗겨내고 새 기와로 갈고 80년 칠산서원 장의(七山書院 掌議)로써 동서원을 중수하고, 84년 임천향교 전교(典校)로 추대되어 명륜당(明倫堂)과 대성전(大成殿) 담장을 개수하고 제상(祭床)과 제기(祭器)를 구비(具備)하였다. 또 충효교실(忠孝敎室)을 개설하여 중 ․ 고생들에게 충효사상과 전통예절(博統禮節)등을 강의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렇듯 일에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하고 인의(仁義)로 조화(調和)를 이루니 향인 모두 안도하고 여러 사람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복지사업(福祉事業)을 쉬지 않고 매진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진력하되 오직 공(公)으로써 하고 사사로움이 없게하니 유림(儒林)이 그 공적을 흠경(欽敬)한 나머지 76년 돌을 다듬어 『靑坡房士柳富赫功績碑』를 세웠다. 그 비(碑)에

『착한 행실, 뛰어난 공적 그 이름 멀리 퍼졌네.

도를 지키고 성인을 앙모하며 제가를 생각하고 성심 다 하였네.

관직에서 봉공하며 모든 일에 규정 있었네.

초 ․ 중 두 학교에서 학문 장려하여 인재 길렀네

풍습을 다스려 문교 세우고 경로당 이루어 공경하였네.

수로를 들어 물을 다스리니 복리가 민생에 미쳤네.

온유한 성품에 두터운 덕망 무릇 백가지 정을 칭송하네.

우뚝 솟은 일좌의 빗돌 그 모습 영세에 맑으리』

<善行㦤績 違播厥名.

衛道幕聖 思齊殫誠.

官公在職 庶事有程.

初中兩校 獎學育英.

敦俗樹敎 敦老堂成.

劃渠理水 利及民生.

溫情厚德 凡百稱情.

然一石 永世風淸>

한편 남다른 위선심과 돈목(敦睦)의 정의로 항상 종중에 화수(花樹)의 훈풍이 충만하게 하고 종중사를 괴롭다고 피하지 않고 몸소 앞장서서 어려운 일을 능히 처리하였으니, 즉 종토등기에 따라 잘못 부과된 1천 8백만원 세금을 관계 요로에 진정하여 끝내 면세(免稅)토록 한 공적은 그 하나의 예요, 부여차류종친회장으로 혹은 문화류씨대종회 부회장 또는 고문등을 역임하면서 쌓은 업적등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이로써 추암공종증(秋岩公宗中)에서 지난 1988년 가을 『청파류인혁위선공적비』를 세우니 비명은 족질 명열(明烈)이 짓고 글씨는 남열(南烈)이 썼다.

배위 순천박씨(順天朴氏)는 심규(心奎)의 따님인데, 15세에 혼인하여 슬하에 4남 3녀를 두니 아들 장열(璋烈)은 부여농지개량조합 이사요, 봉열(琫烈)은 충남면직 상무이사요, 찬열(瓚烈)은 덕

수목재 영업부장이요, 익열(翊烈)은 충청은행 차장이요, 따님은 달성 서정호(達城 徐延浩) ․ 남양 흥성남(南陽 洪性南) ․ 영월 엄범석(寧越 嚴範錫)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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