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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금녕김씨(金寧金氏)


금녕김씨 金 寧 金 氏

<금녕김씨 : 柳寅益 配, 1906.5.5~1950.10.22, 烈婦, 忠景公派 : 大丞公 31世, 부안군 하서면 백연리 대광계>

금녕김씨는 대형(大炯)의 따님으로 부유한 가정이서 태어나 18세에 류문(柳門)으로 출가하니 부군 인익(寅益)은 기만(基萬)의 장자이다.

김씨부인은 천성이 현숙하고 성실하여 비록 빈한한 가정에 출가한 후 부군(夫君)의 무능함도 원망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주야로 길쌈하여 품을 팔고, 중노동에 시달리며 어린 자녀 6남매를 양육하였다.

더욱이 금녕김씨는 친정이 부유했고 또 시가 친척도 모두 넉넉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 어려운 사정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가족의 생계를 도맡아 꾸려 나가자니 힘도 겨웠지마는 때로는 조석으로 끊일 것이 없어도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빈 솥에 물을 붓고 밥짓는 시늉을 하며 연기를 동네 사람들에게 보이곤 하였다.

그러던 중 동족상잔의 6 ․ 25 참변이 돌발하여 적도(赤徒)들은 소위 양반집 자녀를 숙청한다는 명분으로 김씨부인을 두 아들과 함께 납치하였으나 워낙 청순하고 방정함으로 알려진 터라 다행히 면화(免禍)되었다. 그러나 부인의 아름다운 자색(姿色)을 탐하여 겁탈하려 하자 부인은 죽음으로 항거, 정절(貞節)을 지키다가 그들에게 참화를 당하니 그때 나이 44세였다.

금녕김씨는 비록 7일간을 굶으면서도 친척들에게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고, 사활의 위기에 처하여 끝내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절개를 지켰으므로 오늘날 향리에서 가히 현숙한 열부라고 칭송하고 있다.

아들은 연희(連熙)와 종희(鍾熙)인데 연희의 성효로 조부 및 부모의 묘에 묘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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