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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기만(柳基萬)


류기만 柳 基 萬

<류기만 : 1878.5.2~1920.8.18, 光溪里長, 爲民殉職, 忠景公派 : 大丞公 30世>

노강 동발(老岡 東發)의 10대손이요, 상일(相一)의 손이요, 용로(庸魯)의 2자로 부안 하서면 백연리 광계촌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성품과 자질이 총명순직하고 매사에 성실함으로 향리의 신망이 두터웠다.

40세에 향리의 추대로 이장(里長)에 선임되었으며 리 행정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공평무사하고 더욱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불우한 이웃을 돌보아 공의 덕을 수혜(受惠)한 자가 많았다. 그러던 중 1920년에 이곳 부안지방 일대에 호열자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만연하여 인근에 사망자가 날로 증가함을 보고 자신의 생명은 아랑곳없이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을 어구에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주야로 기거하면서 외인의 출입을 막음으로써 이 부락민들의 생명을 보전하였다.

그러나 공은 10여일 동안의 과로 끝에 불행하게도 자신은 이 병에 전염되어 그 움막에서 순직(殉職) 하였으니 그 지위는 비록 이장에 불과하지만 주민을 구원하려는 그 숭고한 정신은 어느 성인의 정신에 못지않는다.

지금도 이 부락 촌로들은 오직 공의 희생이 아니었던들 오늘에 우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공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한다.

한편 공의 배위이신 여산송씨(礪山宋氏)도 부군의 움막에 식사를 공급하다가 부군의 상사(喪事)를 당하자 이를 기피하지 않고 시신(屍身)의 곁에서 애상(哀喪)하다가 또한 감염되어 별세하였으니 가히 열녀라고 칭하였다.

묘는 광계촌 동곡 진좌원(辰坐原)에 모셨다.

아들은 인익(寅益) ․ 인태(寅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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