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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항(柳沆)
 

류 항 柳  沆

 

<류 항 : 1824~1875 : 高宗朝 學行 : 大丞公 30世 : 府尹公派>

자 송좌(宋佐). 호 기당(幾堂).

문흥군 사원(文興君 思援)의 10대손이요, 삼희재 관(三希齋 輨)의 손이요, 회풍(會豐)의 3자로 순조(純祖) 24년 甲申 2월 19일 고양(高陽)에서 태어났다.

특이한 자품(資品)을 타고나 행실이 지극히 착하고 글 재주가 뛰어나 일찍 문학(文學)을 성취하였다.

12세에 부친 상을 당하여 예제에 어김이 없었고 조부 첨추공(僉樞公)을 섬기되 사랑과 공경을 다하였으며 백형 백하 급(白下 汲)이 일찍 돌아가심에 가사(家事)를 전담하여 노친(老親)과 과수(寡嫂)를 지성으로 받드는 한편 아우와 조카들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 었다.

가세가 빈한한데다 거듭 흉년을 만나 끼니가 곤란하였지만 처신은 편안한것 같았으며, 조금이라도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모친을 모심에 감지(甘旨)의 공양을 힘 닿는데까지 소홀하지 않았다. 일찍 자친(慈親)의 환후에 공의 나이 50이 님었는데 손가락을 베어 주혈(注血)하고 급기야 돌아가심에 애척(哀慽)이 과도하여 종상(終喪)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뜨니, 때에 고종(高宗) 12년 乙亥 2월 22일로 향년 겨우52세였다. 묘소는 고양 아연이 선영(高階 阿延伊 先塋)의 문흥군(文興君) 묘소 앞 술좌(戌坐)에 모셔있다.

공께서 문행(文行)이 구비하였으나 영달(榮達)을 구하지 않고 오직 독서(讀書)와 수신(修身)으로 선훈(先訓)을 떨어뜨리지 않음을 평생의 신조(信條)로 삼아 마침내 효우(孝友)와 문학(文學)으로 사림(士林)에 명성을 떨치었다. 공의 유고(遺稿)가 있으며, 운가 심기택(雲稼 沈琦澤)이 묘갈명을 짓고, 오당 이상수(?堂 李象秀)가 묘지를 지었다.

배위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최인(㝡仁)의 따님으로 2남을 두어 인환(寅煥)과 인문(寅文)이다.

공의 장손 광렬(光烈)은 언론인(言論人)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韓國日報 論說委員)을 거쳐 제5대 국회의원(國會議員)을 지냈다.

※ 墓緖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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