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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한정(柳 漢 禎 )
 

류한정 柳  漢  禎

 

<류한정 : 1627~1692 : 肅宗期 處士 : 大丞公 25世 : 祗候使公派>

 

자 숭경(崇卿). 호 오원(烏園).

정암 습(靖庵 隰)의 현손이요, 월산 진영(月山 振榮)의 3자로 인조(仁祖) 5년 丁卯에 군위 구담리(軍威 鳩潭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우(孝友)가 독실할 뿐 아니라 기개(氣槪)가 남다르더니. 학문에 열중하여 마침내 경사(經史) 및 백가제서(百家諸書)를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일찍 과거(科擧) 길에 삼전도(三田渡)를 지나다가 한비(汗碑) 즉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보고,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 이르기를,『거꾸러질듯한 송파나루 비가 한강가에 서 있는데 한 하늘에 어찌 차마 원수와 머리를 함께 하fi 문득 분통한 눈물이 대궐을 향하여 쏟아지는데, 비 바람 천년에도 붉은 마음 변하지 않으리』이렇듯 충분(忠惰)이 북바쳐 숭정(崇禎) 2자를 기리고자 이름과 자를 각각 나눠 쓰고 드디어 과거를 페하고 서사(書史)를 즐기며 여생을 마치었다.

만년에 오산(烏山)기슭에 주거를 옮겨 전원(田園)을 가꾸면서 오원(烏園) 이라 자호하고 창랑곡(滄浪曲). 조대사(釣臺辭). 목우요(牧牛謠) 등을 지어 읊고 유유히 노경(老境)을 지내다가 숙종(肅宗) 18년 壬申 12월26일 졸하니 향년 66세였다. 이듬해 9월 고을 동쪽 향계산 유좌(香桂山 酉坐)에 안장하였다.

배위 진주강씨(晋州姜氏)는 희우(姬佑)의 따님으로 4남 1녀를 두고 졸하니 오천동 덕곡 간좌(梧川洞 德谷 艮坐)에 장례를 모시었다.

아들은 성화(聖和) . 혜화(惠和) . 극화(克和) . 임화(任和)요, 따님은 한양 조이신(漢陽 趙以新)에게 출가하였다.

공의 묘갈명은 병조참판(兵普參判) 초계 정홍경(草溪 鄭鴻慶)이 짓고, 유허비명(遺墟碑銘)은 안통권상규(安鳶 權相圭)가 지었다. 지난 乙亥(1935) 9월에 공의 유지(遺址)에 삼영정(三詠亭)을 지었는데 상량문(上樣文)은 9대손 도선(道善)이 짓고, 정기(亭記)는 야성송준펼(冶城宋浚弼)이 지었으며 인근의 선비들과 후손들이 차운(次韻)하여 공의 유덕(遺德)을 기리었다.

※ 墓碣銘, 甲子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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