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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서산공(자미)묘표 (西山公(自湄)墓表) 149


서산공(자미)묘표

西山公(自湄)墓表

 

  국조의 절의는 오직 장릉(莊陵)(단종(端宗)) 때에 성했는데 세상에서 일컫는 육선생(六先生)(사육신(死六臣))은 참으로 찬연하여 일월처럼 빛나거니와 그 밖에 산림에 자취를 감춘 분도 또한 그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이에 수백년을 지나 비로소 드러난 분으로 내가 한 분을 얻었으니 이른 바 감찰(監察) 류공자미(柳公自湄)이다.   그 가승에 이르기를 공이 경태(景泰) 1451 신미(辛未), 즉 문종(文宗) 원년에 문과에 급제했더니, 5년이 지나 1455 을해(乙亥)에 단종(端宗)이 물러나고 세조(世祖)가 등극할 즈음에 공께서 즉시 절간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었다. 이 때 공의 아들 집현전교리(集賢殿校理) 지(輊)가 공을 따르고자 하거늘, 공이 불가하다 하였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벼슬하였는데 매양 임금을 뵈이면 문득 아뢰기를「신(臣)의 부친은 심질을 얻어 산수간(山水間)을 방랑하고 있나이다.」하였다. 공께서 처음에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신광사(神光寺)에 우거(寓居)하다가 만년에 양주(楊州) 서산(西山)으로 옮기었다. 유명으로 경계하기를 「치상(治喪)에 부도법(浮屠法)(화장(火葬))을 쓰지 말라.」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능히 임금을 위해 죽지 못했으니 선인 곁에 묻지 말고, 묘도(墓道)(묘비(墓碑))에 너희들의 영귀로 인하여 추증된 관직을 쓰지 말라.」하였는데 돌아가심에 이르러 여러 아들들이 감히 유계(遺戒)를 어기지 않았다. 해주(海州)에 사는 노복들이 지금까지도 종가에 진률(榛栗) · 속미(粟米) · 해채(海菜) · 기추(箕箒) 등 공물을 바치고 있는데 이는 공이 수양산(首陽山)에 계실 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공은 문화인으로 정승(政丞) 만수(曼殊)와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원지(原之)와 현감(縣監) 함(浛)은 공의 삼세(三世)이며, 사성(司成) 성원(誠源)은 바로 공의 십이촌(十二寸) 아우가 된다. 공의 아들이 7인이니 윤(輪)은 현령(縣令)이요, 지(輊)는 찬성(贊成)이요, 진(軫)은 부사(府使)요, 헌(軒)은 사과(司果)요, 원(轅)은 현감(縣監)이요, 보(輔)는 직장(直長)이요, 집(輯)은 정랑(正郞)인데 집(輯)의 부인이 바로 성선생삼문(成先生三問)의 손녀이며, 따님이 2인이니 도사(都事) 파평(坡平) 윤구령(尹龜齡)과 도사(都事) 연안(延安) 김(金) 찬(巑)에게 출가하였다.   공의 묘소가 양주(楊州) 한동(漢洞)에 계셨으나 오랫동안 그 소재를 잃었더니 숙종(肅宗) 1681 신유(辛酉)에 후손 세정(世鼎)이 묘 앞에서 작은 빗돌을 발견하였는데 그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류자미(柳自湄)」라 쓰여져 완연히 읽을 수 있었다. 드디어 사람을 보내어 서로 알림에 자손들이 선후로 와서 참배하고 봉축(封築)하니 관(祼)과 세현(世顯)과 세정(世鼎)은 모두 지(輊)의 후손이요, 진방(震芳)은 헌(軒)의 후손이요, 형배(亨培)는 원(轅)의 후손으로 이로부터 묘소의 주인이 있게 되었다. 관(祼)의 아들 세무(世茂)가 또 비석을 세워 그 사적을 드러내고자 나에게 글을 청하였다.   가만히 공의 대절을 더듬어 보니 실로 청한옹(清寒翁)(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으로 더불어 한가지인데 청한옹(清寒翁)은 드러나고 공은 감추어졌으니 이 무슨 까닭인가? 내가 일찌기 동협(東峽)에 우거(寓居)한 적이 있다. 그곳에 청한옹(清寒翁)의 고서(故棲)(유허(遺墟))가 많은데 초동(樵童) 목수(牧豎)들도 능히 그 지명을 알고 머뭇거리며 능히 떠나지 못하니 고사리 캐던 유허가 또한 이곳에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내가 서산에 올라 공의 사적을 찾아 보고자 하였으나 구름이 자욱하고 풀이 우거져 아득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공의 묘소를 이미 잃었다가 다시 드러났으니 이는 공의 대절이 끝내 숨겨지지 않음이라. 아마 그 더디고 빠름이 때가 있어 그러는 것인가?   율곡(栗谷)(이(李) 이(珥))선생이 청한옹(清寒翁)의 전기를 지었는데 비록 그 명교(名敎)를 포기한데 대해서는 비록 원망하였으나 그 절의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백세의 스승이라 말할지라도 또한 절실하리라.」하였던바, 만약 공으로 하여금 일시에 드러나도록 하였다면 마땅히 함께 전해졌을 것이니 어찌 달리 평론하겠는가? 우선 이를 기록하여 후일에 상론하는 분을 기다리노라.

숭정재기유구월

도암이재찬

 

西山柳公自湄墓表

 

國朝節義惟 莊陵爲盛世所稱六先生者固焯然與日月爭光矣其餘晦跡山林者又不知其幾而乃或歷數百年始顯余得一人焉曰監察柳公自湄其家乘云公景泰辛未文科越五載乙亥爲 禪受之際公卽走入空門以歿其身公子集賢殿校理輊欲從公公不可強之仕每請覲輒曰臣父得心疾放浪山水間云始寓首陽之神光晚移西山遺戒治喪勿用浮屠法且曰吾不能死於君勿葬先人側墓道毋書汝曹推恩官職及卒諸子不敢違臧獲之在海州者于宗子家至今有榛栗粟米海菜箕箒之貢盖自公在首陽始公文化人政丞曼殊商議中樞原之縣監浛爲公三世司成誠源寔公十二弟公子七人輪縣令輊贊成軫府使軒司果轅縣監輔直長輯正郞輯之婦成先生三問之孫女二人適都事坡平尹龜齡都事延安金巑也公墓在楊州之漢洞久而失其處 肅宗辛酉後孫世鼎得片石於墓前書曰司憲監察柳自湄宛然可讀遂走相告子孫後先來謁而封築之曰祼曰世顯與世鼎皆輊之后曰震芳軒之后曰亨培轅之后自是墓有主祼之子世茂又樹碣以表其事屬余文竊跡公大節實與清寒翁一流耳清寒顯公則晦此曷故焉余嘗寓東峽其地多清寒故棲樵童牧豎能識其名躑躅不能去不知採薇遺墟亦有是也否余登西山欲訪公事蹟而雲烟草莾杳然不可識矣然公之墓旣失而復顯則是公大節終不可得而晦也豈遲速有時而然歟栗谷先生傳清寒翁雖病其抛棄名敎而至論其節義則曰雖謂之百世之師亦近之使公顯於一時卽當同傳豈容改評姑記此以俟後之尙論者云

崇禎再己酉九月

陶菴李縡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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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159  광주공(경)약사 (廣州公(坰)略事) 167     편집인 2012/11/23  [858]  
158  영의정문희류공순묘표 (領議政文僖柳公洵墓表) 166     편집인 2012/11/23  [1015]  
157  문희공(류순)묘지명 (文僖公(柳洵)墓誌銘) 165     편집인 2012/11/23  [1110]  
156  우찬성평간공(지)약사 (右贊成平簡公(輊)略事) 164     편집인 2012/11/23  [1017]  
155  선산부사공(희철)묘갈명 (善山府使公(希轍)墓碣銘) 163     편집인 2012/11/23  [934]  
154  괴산공(계분)묘갈명 (槐山公(桂芬)墓碣銘) 162     편집인 2012/11/23  [1036]  
153  영암공(희정)묘갈명 (靈巖公(希汀)墓碣銘) 161     편집인 2012/11/23  [879]  
152  홍문관부제학류공희저신도비명 (弘文館副提學柳公希渚神道碑銘) 160     편집인 2012/11/23  [1151]  
151  사제부제학공(희저)사제문 (賜祭副提學公(希渚)賜祭文) 159     편집인 2012/11/23  [985]  
150  금산군수성곡공(약)묘갈명 (錦山郡守醒谷公(約)墓碣銘) 158     편집인 2012/11/23  [1106]  
149  합천군수류공(륜)묘갈명 (陜川郡守柳公(綸)墓碣銘) 157     편집인 2012/11/23  [1056]  
148  반곡공(적)행장 (盤谷公(績)行狀) 156     편집인 2012/11/23  [897]  
147  문산군(하)약사 (文山君(河)略事) 155     편집인 2012/11/23  [1066]  
146  첨정공(인유)약사 (僉正公(仁濡)略事) 154     편집인 2012/11/23  [960]  
145  홍문교리죽계공(인홍)묘갈명 (弘文校理竹溪公(仁洪)墓碣銘) 153     편집인 2012/11/23  [1197]  
144  공조참의공(인호)약사 (工曹參議公(仁濠)略事) 152     편집인 2012/11/23  [884]  
143  안변공(인수)약사 (安邊公(仁洙)略事) 151     편집인 2012/11/23  [886]  
142  증숭정대부의정부우찬성행통훈대부사헌부감찰서산류선생 신도비명 150     편집인 2012/11/23  [1136]  
 서산공(자미)묘표 (西山公(自湄)墓表) 149     편집인 2012/11/23  [1118]  
140  광주목사공(곡)묘갈명 (光州牧使公(轂)墓碣銘) 148     편집인 2012/11/23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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