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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합천군수류공(륜)묘갈명 (陜川郡守柳公(綸)墓碣銘) 157


합천군수류
공(륜)묘갈명

陜川郡守柳公(綸)墓碣銘

 

  단종병자정축년간(端宗丙子丁丑年間)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하였으니 이는 만세토록 신자(臣子)로써 차마 말하지 못 할 일이라. 그때 어떤 이는 그 기미를 보고 은퇴하여 세속(世俗)으로 더불어 동화되지 않고 이름을 감추고 몸을 결백히 하여 강호간(江湖間)에 떠돌면서 대의를 백세후에 밝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았으니 가히 들치건대 공이 그 중 한분이라.   공의 휘는 윤(綸)이라. 문화류씨(文化柳氏)는 동방(東方)의 대성(大姓)으로 고려(高麗) 대승공(大丞公) 휘차달(諱車達)로부터 고관과 명망 높은 분이 대대로 연이었으니, 휘 공권(公權)은 정당문학참지정사(政堂文學參知政事)로 시문간(諡文簡)이니 공의 구대조(九代祖)요, 증조(曾祖)의 휘는 계조(繼祖)니 안사훈(安社勳)에 책봉(策封)되어 벽상(壁上)에 도형(圖形)하고 영의정(領議政) 문화군(文化君)에 증직되었고, 조(祖)의 휘는 양(亮)이니 조선조(朝鮮朝)에 우의정(右議政) 문성부원군(文城府院君) 대제학(大提學)으로 시호(諡號) 충경공(忠景公)이요, 고(考)의 휘는 한생(漢生)이니 음사(蔭士)로 지평(持平) 소윤(少尹)을 역임했는데 청백하고 순량하여 충절을 스스로 힘썼으며, 비(妣)는 정부인(貞夫人) 화순최씨(和順崔氏)니 상호군(上護軍) 우(宇)의 따님이라.   공이 출생하여서부터 재질이 출중하여 가정의 교훈을 잘 배우더니, 점점 성장하면서 침착하고 과묵하여 비록 아무리 급한 일에 봉착했을지라도 조금도 안색이나 동작을 동요하지 않았으며, 대인에 화기가 애연히 춘풍같고, 일의 처리가 결연(決然)히 상설 같아서 왜곡하는 뜻이 없었다. 때문에 친우가 적었는데 그 친하게 교우하는 이는 진심을 토로하였으니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과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과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와 같은 분이 모두 망년의 교우였다. 조년에 벼슬하여 사직으로부터 시작하여 외직으로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역임했지만 그 정치하는 요체가 자상하고 청렴결백하므로 기강이 문란치 아니하여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재앙의 세대를 만나 정강이 일변하여 국내외가 위험한 공포속에서 불안하더니, 단종(端宗)이 손위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당세에 뜻이 없어 퇴직하고 남하하여 남해에 은거하면서 더욱 절개를 굳게 하고 행동을 가다듬어 그 지조를 고상하게 가져 자신을 결백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후세에 전 할 만한 가언과 선행이 많을 것인데, 애석하게 임진란(壬辰亂)을 겪은 후로 후손이 미약하고 문헌(文獻)이 부족하여 다 알 수 없고 다만 한두가지만 남았으니, 어찌 탄식할 일이 아니랴! 그러나 공이 일찌기 자손에게 교훈하기를 인간의 도리는 성현의 글을 탐독하여 그 의리를 잘 알아서 위로는 선조의 쌓으신 덕을 수행하고, 아래로는 후생교육하는 방법을 계몽하여야 되는 것이니, 이렇게 해야 실로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다 하였다. 이 일언의 교훈을 미루어 보면 백행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니, 이른바 한 점의 고기로 온 솥 안의 맛을 안다는 말이라. 그런즉 공의 전체 사행을 가히 이로써 보겠다. 공이 영월(寜越)에 계신 단종대왕(端宗大王)이 별세함을 듣고 입산통곡한 후로 종신토록 북향하여 앉지 아니했으니 이는 세조(世祖)에게 불신하는 뜻을 보임이라. 동봉(東峰) 김시습(金時習)과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과 함께 항상 서로 종유하며 여생(餘生)을 스스로 방랑하다가 세상을 마치니 고을 서쪽 평현리(平峴里) 풍계산(豐溪山) 자좌원(子坐原)에 안장하다.   배위 숙인(淑人) 행주기씨(幸州奇氏)는 낭장(郞將) 신(愼)의 따님인데 현숙하고 양순하여 부도를 잘 지키더니 공 보다 몇 년 후에 별세하여 공의 묘에 합장하다. 삼남일녀를 출생하니 진사(進士) 종(淙)과 충의위(忠義衛) 전(沺)과 윤(潤)이요, 여(女)는 첨정(僉正) 심(沈) 언(漹)에게 출가하였다. 어모장군(禦侮將軍) 난(蘭)은 종(淙)의 소생이요, 기당(起塘)과 기파(起坡)는 전(沺)의 소생이요, 기방(起方)은 윤(潤)의 소생이라. 증현(曾玄) 이하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   공이 대대로 훌륭한 가문에 출생하여 부귀를 초개같이 보고 위무에 불굴하며 조정에서는 항직(抗直)을 스스로 지키고 고을을 다스림에 청백으로 힘쓰더니 불행하게도 혼란한 세대를 만나서 비록 산림에서 여생을 마쳤으나 그 사업은 후세를 계몽하는 방도(方道)를 수립했으니 어찌 한날 관작의 높고 낮음이 공에게 경중이 되겠는가?   그 후손 인평(寅平)과 정석(丁錫)이 공의 행을 가지고 천리 멀고 먼 궁산(窮山) 적막한 곳에 나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원컨대 그대의 일언으로 길이 우리 선조의 사적을 불후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하기에 내 비록 문장은 못하지만 그 정성에 감동되어 굳이 사양하지 못하고 드디어 명을 지어 이르노니  
 대승공(大丞公)은 홍의하시고 충경공(忠景公)은 청렴정직 하셨는데, 
 
 공이 특별히 빼어나서 능히 그 덕업을 계승하였도다. 
 
 행동이 씩씩하여 타인과 함께 따름을 수치로 여기고, 
 
 의를 지키고 몸을 정직하게 하니 오직 지조를 견지함이라. 
 
 청강(清剛)해도 온화(溫和)하고 평탄해도 방정하였으니 
 
 그 근원이 진정 깊고 그 지모가 정말 빛났도다. 
 
 불숙한 때를 만나 세상에 생존함을 치욕으로 여기거든, 
 
 하물며 어찌 관작에 얽매어 편안하고 한가함을 좆았겠는가? 
 
 저 영남(嶺南)의 강물이 저다지 세차게 흐르거니, 
 
 공의 복록(福祿)과 경사(慶事)가 도도한 강물처럼 길이길이 전하리로다.

금성오필선근찬

 

陜川郡守柳公綸墓碣銘

 

莊陵丙丁間國紀蒼黃此萬世臣子之所不忍言其或見幾色擧不與俗浮沉而韜光潔身漂泊江海間明大義於百世没而不悔者歷擧可槩而公居其一焉公諱綸文化之柳爲東方大姓自高麗大丞公諱車達高官名勝累累相傳至諱公權政堂文學叅知政事諡文簡寔於公爲九世曾祖諱繼祖策安社勳圖形壁上贈領議政文化君祖諱亮入我 朝右議政文城府院君大提學諡忠景公考諱漢生蔭持平少尹清愼循良名節自勵妣貞夫人和順崔氏上護軍宇女公生而岐嶷承襲家庭擩染耳目及長沉靜寡黙雖遇倉卒亦不動聲氣其接人則和氣藹然遇事剛果未嘗有骫骳之意故知者蓋寡而其知之者必傾心焉如成梅竹三問朴翠琴彭年河丹溪緯地皆忘年交也早歲筮仕自司直外補陜川其爲政主於慈祥清淨而綱條不紊頗有聲績世値陽九政綱一變則中外危懼及其遜位也遂無意於當世解紱南歸居于南海砥節勵行高尙其志以自潔焉其嘉言懿行宜有可傳於後者而一經龍蛇兵燹後仍零替文獻無可徵未能掇拾只存一二是可惜也然而嘗訓子孫曰爲人之道讀聖賢書識其義理上以修先世積累之德下以啓後生敎育之方實無愧於人只此一言可以蔽百行所謂一臠而知全鼎之味者然則公之全體大用可見於此矣公及聞寧越 主上賓天入山痛哭終身坐不北向以視不臣之義與東峰金時習秋江南孝溫每相從遊流放自適而卒葬于縣西平峴里豐溪山子坐原配淑人幸州奇氏郞將愼女淑哲柔嘉甚執婦道後公歿祔公墓生三男一女長淙進士次沺忠義衛次潤女適沈漹僉正孫男蘭禦侮長房出起塘起坡仲房出起方季房出曾玄以下不盡錄公以簪纓世家視富貴如草芥不以威武屈其己在朝以抗直自守治郡以清白爲務不幸而値蔑貞雖坎坷以歿其所樹立固足以扶植世道則於公奚爲輕重也哉其後孫寅平丁錫袖其狀千里重趼訪余於窮山寂寞之中願一言以圖不朽余雖不文見其誠則可敬不敢以固辭遂爲之銘曰 大丞弘毅忠景廉直維公挺特克承厥德行其揭揭恥與人隨守義直躬惟志之持清剛而溫坦夷而方其源旣深厥猷以光遭時不淑恥生於世矧何縻爵安閑泄泄彼嶺之南江水湯湯公之祉慶與之俱長

錦城吳弼善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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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159  광주공(경)약사 (廣州公(坰)略事) 167     편집인 2012/11/23  [858]  
158  영의정문희류공순묘표 (領議政文僖柳公洵墓表) 166     편집인 2012/11/23  [1015]  
157  문희공(류순)묘지명 (文僖公(柳洵)墓誌銘) 165     편집인 2012/11/23  [1111]  
156  우찬성평간공(지)약사 (右贊成平簡公(輊)略事) 164     편집인 2012/11/23  [1017]  
155  선산부사공(희철)묘갈명 (善山府使公(希轍)墓碣銘) 163     편집인 2012/11/23  [934]  
154  괴산공(계분)묘갈명 (槐山公(桂芬)墓碣銘) 162     편집인 2012/11/23  [1036]  
153  영암공(희정)묘갈명 (靈巖公(希汀)墓碣銘) 161     편집인 2012/11/23  [879]  
152  홍문관부제학류공희저신도비명 (弘文館副提學柳公希渚神道碑銘) 160     편집인 2012/11/23  [1151]  
151  사제부제학공(희저)사제문 (賜祭副提學公(希渚)賜祭文) 159     편집인 2012/11/23  [985]  
150  금산군수성곡공(약)묘갈명 (錦山郡守醒谷公(約)墓碣銘) 158     편집인 2012/11/23  [1106]  
 합천군수류공(륜)묘갈명 (陜川郡守柳公(綸)墓碣銘) 157     편집인 2012/11/23  [1056]  
148  반곡공(적)행장 (盤谷公(績)行狀) 156     편집인 2012/11/23  [897]  
147  문산군(하)약사 (文山君(河)略事) 155     편집인 2012/11/23  [1066]  
146  첨정공(인유)약사 (僉正公(仁濡)略事) 154     편집인 2012/11/23  [960]  
145  홍문교리죽계공(인홍)묘갈명 (弘文校理竹溪公(仁洪)墓碣銘) 153     편집인 2012/11/23  [1197]  
144  공조참의공(인호)약사 (工曹參議公(仁濠)略事) 152     편집인 2012/11/23  [884]  
143  안변공(인수)약사 (安邊公(仁洙)略事) 151     편집인 2012/11/23  [886]  
142  증숭정대부의정부우찬성행통훈대부사헌부감찰서산류선생 신도비명 150     편집인 2012/11/23  [1136]  
141  서산공(자미)묘표 (西山公(自湄)墓表) 149     편집인 2012/11/23  [1119]  
140  광주목사공(곡)묘갈명 (光州牧使公(轂)墓碣銘) 148     편집인 2012/11/23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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