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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초료당공(덕용)묘갈명 (鷦鷯堂公(德龍)墓碣銘) 269


초료당공(덕용)묘갈명

鷦鷯堂公(德龍)墓碣銘

 

  공(公)의 휘(諱)는 덕룡(德龍)이요, 자(字)는 시견(時見)이요, 호(號)는 초료당(鷦鷯堂)이다. 류씨(柳氏)는 본래 문화인(文化人)으로 고려(高麗) 대승(大丞) 차달(車達)이 비조(鼻祖)가 되며, 그 후 12세에 본조(本朝)에 들어와 좌의정(左議政) 휘(諱) 만수(曼殊)와 증리조판서(贈吏曹判書) 휘 원지(原之)는 그 외훈(嵬勳)과 대렬(大烈)이 국사에 기록되고 고조(高祖)의 휘는 형(泂)이니 현감(縣監)이요, 증조의 휘는 첨년(添年)이니 어모장군(禦侮將軍)이요, 조(祖)의 휘는 옥남(玉男)이니 충순위(忠順衛)요, 고(考)의 휘는 홍(洪)이니 부장(部將)이며. 비(妣)는 함안리씨(咸安李氏)니 충무위(忠武衛) 수(秀)의 따님이다.   가정(嘉靖) 계해(癸亥)(명종(明宗) 18년 · 1563년에 공이 출생하여 5세에 육갑(六甲)을 외우고 산수(算數)를 알았으며 7세에 책을 가지고 글 배우기를 청하여 배움이 날로 진취하니 남명(南冥) 조선생(曺先生)이 듣고 기특히 여겨 불러 보시고 이마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미우(眉宇)가 비범하고 재주가 높으니 가히 가르칠만 하다.』 하시고 소학을 가르치셨다. 이로부터 드디어 산해(山海)(남명(南冥))의 문정(門庭)에 왕래하며 친자(親炙)하고 관감하더니 선생이 병환이 있거늘 공이 몸소 시탕(侍湯)하였다. 돌아가심에 미쳐 선생께서 하각재(河覺齋) 항을 돌아보시며 이르시되 『이 아해(兒孩)는 반드시 성취할 것이니 잘 장진(獎進)하여 우리 고장의 안자(顔子)를 만들라.』 하셨다. 그 후로 각재의 문하에 수학하니 각재가 그 지행(志行)을 사랑하여 사위를 삼았다.   모부인(母夫人)이 병환이 위중하심에 몸소 죽을 끓이고 주야(晝夜)로 분뇨(糞尿)를 맛보며 하늘에 기도하더니 상을 당함에 상례(喪禮)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여 치렀다. (716)   부인 하씨(河氏)가 우귀(于歸)도 못한채 병이 들어서 임종에 즈음하여 한번 만나 안면이나 알고 영결하기를 청하니 공이 이르기를 『죽으면 가히 조상(吊喪)할지언정 살아서는 가히 상면은 못한다.』하고 적삼 하나를 보내어 염습(殮襲)토록 하였으니 그 예를 집행함이 이와 같았다.   1592 임진(壬辰)연에 왜구가 갑자기 들이닥쳐 엄군(嚴君)(부친(父親))이 위급하게 되었거늘, 공이 자매로 더불어 칼날을 무릅쓰고 부친을 호위하며 죽기로 다투니 적이 또한 감동하여 조금 완화하거늘 공이 부친을 업고 도망한 후에 자매는 그들에게 붙잡혀 마침내 깨끗이 죽으니 사실이 조정에 들리어 함께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무릅썼다. 여러 해를 난리 속에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버이 공양은 빠짐이 없었고 주역(周易) 일서(一書)는 손에서 버리지 않았다. 1603 계묘(癸卯)년에 엄친(嚴親)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애훼(哀毁)하고 묘를 정성껏 하여 혹독한 추위와 극심한 더위에도 폐하지 않았다.   복을 마친 후에 학문에 전의(專意)하여 문달(聞達)을 구하지 않고 오직 일심으로 사문(斯門)에 귀숙할 것을 뜻하고 삼가(三嘉)의 용정(龍亭)으로 이거하니 곧 남명(南冥)의 구지(舊址)였다. 때때로 청우(靑牛)를 타고 혹은 죽장(竹杖)과 나막신으로 춘추(春秋)로 두류산(頭流山)에 들어가서 덕천서원(德川書院)에 배알(拜謁)하고 우모(寓慕)하였다. 초료(鷦鷯)는 작은 새인데 마땅이 호(號)할 것이 없으니 이 새는 길들임이 벽도(碧桃)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아 그 사는 것이 숨어살며 그 성품이 정결하니 다른 물건이 해치지 못하는 것이다. 공이 이로서 스스로 호(號)를 삼았으니 그 뜻을 가히 보겠도다.   장릉(長陵) 갑신(甲申) (인조(仁祖) 22년 : 1644) 정월18일에 고종(考終)하시니 수 82세로서 북산정(北山亭) 후(後) 손좌원(巽坐原)에 안장하였다.   전배(前配) 하씨(河氏)는 무육(無育)하고, 후배(後配)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진사(進士) 사렴(士廉)의 따님인데 일남을 낳았으니 영한(暎漢)이요. 영한(暎漢)의 아들은 공진(拱辰) 공두(拱斗) 공일(拱日) 공삼(拱參)이며, 증손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이제 그 9대손 의두(宜斗)가 북(北)으로 삼백리를 와서 공의 묘도(墓道)의 글을 청하니 굳이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가만히 생각컨대 동소남(董召南)은 궁벽(窮僻)한 시골의 한낱 한미한 선비였는데 만일 한창려(韓昌黎)의 일률(一律)의 시가 있지 않았으면 누가 소남(召南)의 실행이 이 같음을 알았으리요? 내가 창려(昌黎)의 글솜씨가 없어서 족히 멀리 나타내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노라. 아아! 이어 명을 지어 명에 이르노니, (717)   아아 성하도다! 명철(明哲)한 선비는 벼슬을 생각치 않고,   도는 스승으로써 밝히고 학문은 마음으로 맹서했도다.   작은 뱁새의 길들임이 어둠으로서 밝혀지나니,   백세에 불후의 글로써 공의 명성을 표하노라.

통훈대부전충청도도사풍산류주목찬

 

鷦鷯堂柳公德龍墓碣銘

 

公諱德龍字時見號鷦鷯堂柳氏本文化人高麗大丞車達爲鼻祖其後十二世入  本朝左議政諱曼殊贈吏曹判書諱原之其嵬勳大烈銘彝鼎高祖諱泂縣監曾祖諱添年禦侮祖諱玉男忠順衛考諱洪部將妣咸安李氏忠武衛秀女也嘉靖癸亥公生五歲誦六甲知籌數七歲持册請學學日進南冥曺先生聞而奇之招見拊頂曰眉宇非凡才高可敎敎以小學自是遂往來於山海之門親炙觀感先生有疾公身湯罏畔易簀日先生顧河覺齋沆曰此兒必成就善獎進做得吾鄕之顔子其後摳衣覺齋之門覺齋愛其志行妻以女母夫人病㞃餌粥躬煎日夜嘗糞禱天遭憂喪禮依家禮河氏未于歸病臨終請一識面訣公曰死可吊生不可面送一衫以襲其執禮如此壬辰倭寇猝迫嚴君臨急公與姊妹冒刃衛父爭死賊亦感動少爲緩公負親逃姊妹竟潔身死事 聞幷旌累歲奔竄備涉險艱供親無闕龍繇一書不去手癸卯丁嚴公憂哀毁展省祈寒盛暑日不或廢服闋後專意學問不求聞達惟以一心斯門爲歸 (715) 宿地僑嘉之龍亭卽南冥舊址也有時騎靑牛或竹杖草屩春秋入頭流謁德川書院以寓慕鷦鷯小鳥也宜無以爲號是鳥也棲不過碧桃一枝而其居隱其性潔物不得以害之者也公之以此自號其意可見也 長陵甲申正月十八日考終壽八十二葬北山亭後巽坐原前配河氏無育後配密陽朴氏進士士廉女生一男暎漢暎漢男拱辰拱斗拱日拱參曾玄以下不錄今其九代孫宜斗北來三百里請公墓道之文辭之固不獲則竊惟董召南窮鄕之一寒士也不有韓昌黎一詩夫誰知召南之實行爲如此哉愧余無昌黎之筆不足以示遠嗟夫系以銘銘曰

猗嗟哲士圭組非爾以師炳學以心矢鷦小之棲用晦而明百世之筆而表公名

通訓大夫前忠淸道都事豐山柳疇睦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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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279  반계수록해제 (磻溪隨錄解題 ) 287     편집인 2012/11/28  [683]  
278  반계류공형원전 (磻溪柳公馨遠傳) 286     편집인 2012/11/28  [923]  
277  반계공(형원)행장 (磻溪公(馨遠)行狀) 285     편집인 2012/11/28  [1396]  
276  좌윤공(봉징)약사 (左尹公(鳳徵)略事) 284     편집인 2012/11/28  [845]  
275  갑산부사공(구징)약사 (甲山府使公(龜徵)略事) 283     편집인 2012/11/28  [977]  
274  적암공(상진)사적 (適菴公(尙軫)事蹟) 282     편집인 2012/11/28  [729]  
273  결청재공(담후)행장 (潔淸齋公(譚厚)行狀) 281     편집인 2012/11/28  [1455]  
272  황해도도사용당공(인량)묘표 (黃海道都事龍塘公(寅亮)墓表) 280     편집인 2012/11/28  [1032]  
271  대사간공(상재)묘표 (大司諫公(尙載)墓表) 279     편집인 2012/11/28  [1044]  
270  영의정충간공(상운)묘갈명 (領議政忠簡公(尙運)墓碣銘) 278     편집인 2012/11/28  [1240]  
269  백암공(인)약사 (白菴公(忍)略事) 277     편집인 2012/11/28  [959]  
268  치헌공(세훈)묘갈명 (恥軒公(世勛)墓碣銘) 276     편집인 2012/11/28  [1102]  
267  원주공(철)약사 (原州公(澈)略事) 275     편집인 2012/11/28  [987]  
266  수신재공(사신)칠세연행 (守愼齋公(士信)七世聯行) 274     편집인 2012/11/28  [1159]  
265  진해공(지정)약사 (鎭海公(之禎)略事) 273     편집인 2012/11/28  [807]  
264  운강공(항)행장 (雲江公(沆)行狀) 272     편집인 2012/11/28  [847]  
263  반곡공(도)묘갈명 (盤谷公(棹)墓碣銘) 271     편집인 2012/11/28  [1027]  
262  백석공(즙)묘갈명 (白石公(楫)墓碣銘) 270     편집인 2012/11/28  [979]  
 초료당공(덕용)묘갈명 (鷦鷯堂公(德龍)墓碣銘) 269     편집인 2012/11/28  [1032]  
260  칠송공(곤수)묘지 (七松公(鵾壽)墓誌) 268     편집인 2012/11/28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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